그림에게 - 삶의 조각들
나는 흩어진 삶의 조각, 분리된 생활체계, 그리고 부유하는 심리상태 등을 자연물의 형상이나 사물의 패턴 등에 투사하여 에칭, 실크스크린, 콜라그래피, 드라이포인트, 석판화 등의 판화 기법을 이용하여 찍어낸 후 오리거나 겹치거나 붙이는 다양한 조합을 통해 화면을 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것은 겹쳐진 각각의 은유적인 이미지들이 만들어 내는 복합적인 플롯의 구성과 관련되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연속되지 않은 생활과 타인의 피상적인 시선과 같은 것들을 삶의 속성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소재가 되는 동식물의 형상이나 반복되는 패턴 등은 제각기 직접적인 경험이나 감정이 투사된 은유이며, 이 소재들이 판재의 물리적인 속성이나 재료를 다루는 공정과 조화를 이루면서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화면에 조합하여 콜라쥬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면서 스스로 이야기거리가 되어 나에게 또는 그림을 보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의 삶은 ‘삼총사’ 보다는 ‘율리시스’와 비슷하다.” 라고 시작되는 에코의 문장을 나는 자주 인용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율리시스’ 보다는 ‘삼총사’의 범주를 사용해서 삶을 생각한다. 전통적인 소설, 즉 로망스로 생각할 때 만이 삶을 회상하거나 삶에 대해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즉 실제의 삶은 시어처럼, 또는 무의미한 음성의 나열처럼 조각으로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원인과 결과가 규명된 육하원칙으로 설명하고 표현하고 평가하고자 하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그림을 그리고 판을 만들고 찍고 오리고 붙이는 것은 일상의 강박적인 스토리텔링을 해체하고 부유하는 순간의 조각들로 해소하는 실험의 즐거움과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제한적인 공간과 사회적인 규정, 외부에서 부여된 의무사항이나 전통적인 기대치,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부응하고자 하는 자아가 있지만, 내면에는 좀더 자유롭고자 하고, 도망가고 싶고, 가벼워지고 싶은 욕망이 끊임없이 솟아난다. 이로서 생겨나는 균열과 무게감, 심리적인 갈등과 고민은 “그림 그리기”로 시작되는 조형 행위를 통해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시작되는 그림이지만, 점점 쌓여가면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감상자들도 함께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으면 한다.그러기위해 예민하지만 소심하지 않게 크고 작은 일상의 모습에 의미를 찾는 과정을 멈추지 않고 지속하리라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