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꽃밭, 밤과 꽃밭, 2023, Acrylic, Collagraph, Silkscreen on Hanji, Collage on canvas, 97x130.3cm

밤나팔꽃, 2023,  Acrylic, tusche on canvas, Collagraph on Hanji, Collage on canvas, 80.3x116cm

아빠의 정원,2023, Oil color monotype, Collagraph on Hanji, Collage on canvas, 100x65.1cm

벌레먹은 잎, 2023,, Acrylic, Collagraph on Hanji, Collage on canvas, 53.0x33.4cm

두동강 로즈마리, 2023, Acrylic, drypoint on Hanji, Collage on canvas, 45.5x53.0cm

Vermilion & Sap Green, 2023 Acrylic on canvas, drypoint on Hanji, Collage on canvas, 45.5x 53.0cm

벌레먹은 그림자, 2023, Oil color monotype, Acrylic on Hanji, Collage on paper, 40x50cm

상처와 회복, 2023, Drypoint, Collagraph on Hanji, Collage on paper, 40x50cm

거울과 그림자, 2023, Collagraph on Hanji, Collage on canvas, 50x60.6cm

까마귀와 올빼미, 2023, Silkscreen on Hanji, Collage on canvas, 33.4x45.5cm

암울한 나날들이었다사회적인 분위기도 한몫했을지도 모르지만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개인적인 우울감이 강했고타인을 만나는 것은 커녕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도 어려운 시간들을 보냈다.   상대적으로 그들은 너무 아름다웠다감히 나는 그들의 보드라운 질감오묘한 색상과 완벽한 형태를 흉내낼 수 조차 없을 것 같았고내가 아닌 모든 타인이 그렇게 보였다.  자신의 상처를 감추고 다른 존재를 보살펴야 한다는 부담과 무력감이 강하게 들었다마치 모래성처럼 하염없이 무너지는 하루하루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과 밤으로 구분되는 반복적인 일상에서 밤이라는 조용한 시간에 나는 그 모래성을 미친듯이 쌓았다나에게는 광합성과 호흡의 사이클이 뒤바뀐것 처럼 느껴지는그런 시간들이었다.  요동치던 고통이 바닥으로 조용히 가라앉으면 비로소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그리고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에 대한 상상과 계획을 하면서 즐거움을 갖는 시간이 나에게는 밤이다그러던 얼마전밤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울렁이는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  드디어 무작정 뛰쳐나왔다그렇게 나온 이상 다시 들어갈수도 없었고달리 갈곳도 없었다몇시간이나 어둡고 두려운 외부의 세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푹푹찌는 밤을 보내야만 했고 어느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잡지도 않았다그렇게 동네를 빙빙돌다가 늘 지나던 집근처의 밤나팔꽃을 마주하게 되었다낮에는 눈에 띠지 않아 무심코 지나칠 수 밖에 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으나불빛도 서서히 꺼져 천지가 깜깜한 가운데 유달리 환하게 빛나던 하얗고 작은 꽃이 있었다.  그 이후 꽤 오랜 시간을 서성이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난 가끔씩 나팔꽃을 보러 그 길로 나가곤했다.  어쩌면 나도 그들에게 꽤 그럴듯한 아름다운 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적절하게 스스로를 포장하고 어울리면서 어느정도 흉내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반대로 그들 역시 강한 태양이 내리쬐는 눈부시는 꽃밭에서 더 짙어지는 그림자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동안 나의 작업은 삶의 과정에서 발을 딛고 체감하고 있는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상황을 반영해 왔다내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란 대개는 드러내서 표현하고 싶기보다는 오히려 감추고 싶거나 아무렇지 않은 듯 극복하고 싶은 그러한 종류였기때문에  간접적인 방식으로  좀 더 비교적 아름답거나 행복한 형상을 가진 소재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법을 택해왔다.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전시에는 제목이 있다그렇지만 각각 전시의 제목을 필두로 해서 작업의 성격이  크게 변화하는 것은 아닌것 같다이번 전시 역시  여러가지  면에서궂고 변덕스럽지만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날씨와도 같은 인생의 고비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던 지난  전시 ”어제의 날씨”의 연장선이자 변곡점이 아닐까 한다
 “밤”이라는 단어와 “꽃밭” 이라는 단어가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다. “밤의 꽃밭” 이라면,  야행성의 우울한 내가 밤에 펼치는 상상그리고 실재하는  현실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더 사실적이고 구체적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세계를 의미하는 반면, “밤과 꽃밭” 이라는 어구는 어둡고 암울한 자신과 화려하고 빛나는 타인을 대비하는  마음의 상태를 대조적으로 나타낸다고 생각했다나는 이 두가지 어구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작업을 진행했다그리고 혼란스러웠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내가 겪은 가장 큰 변화는 작업의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좀 더 회화적인 표현들을 강조하고자 했다는 점이다그간 비교적 소재의 윤곽선이나 세부적인 섬세함을 강조해왔다면 최근에는 텍스쳐나 색의 대비붓놀림과 같은 직감적인 조형요소들을 좀 더 연구해 보고싶었다.  이를 위해 판화의 단계적 프로세스에서 반복적인 요소보다는 변주를 좀 더 강조하였고모노타입이나 콜라그래프와 같은 회화적인 판화기법을 중점적으로 활용하였을 뿐 아니라 물감과 해먹등을 화면에 직접 칠하거나 번지게 하면서 윤곽선을 흐리게 하고 추상화된 분위기를 표현해보고자 시도해보기도 했다.  화려한 꽃의 원색과 더불어 그와 대비되는 짙은 그림자의 색채도가 낮은 색등을 배색하거나회화적인 붓질과 콜라주를 조합하는 마감등에 의외의 오류들을 겪었고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웠지만 어찌보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보다는 조금 두려워 하던 대상에 용기를 가지고 한발짝 다가섰다는 데에 큰 의미를 두며모든 과정이 침체된 스스로에게 환기를 일으키는 적극적인 즐거움을 향한 유희적인 노력이 아니었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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